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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8(목) 22:41
아리의 눈물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22년 09월 28일(수) 00:00
/류준식 한국문협·시조시인협회원
남들 다 가는 장가를 바빠서 못가겠다는 아들놈이 개 한 마리를 불쑥 안고 왔다. 순백에 까만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강아지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정체는 말티즈였다.
예명은 메아리. 그러니까 성은 ‘메’가고 이름은 ‘아리’인 게다. 외로울까봐 친구가 줬는데 잦은 출장으로 독방지기가 안쓰럽고 남 줄 수는 없어 결국엔 내 차지가 된 것이다.
그동안 제 깐에 잔정이 들어 어르고 쓰다듬고 볼만하다. 목걸이까지 해 주었다. 가정을 꾸려 쏟을 정을 아리에게 쏟고 있는 것이겠지 생각하니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아내와 자식에게 쏟을 정이 이만하겠는가 싶을 정도다. 여러 번 부탁하면서도 미덥지 못한지 거듭 당부한다.
“밥은 꼭 이렇게 던져서 주시고요. 껌과 장난감은 여기 있고 목욕은 3일에 한 번씩 꼭 이 샴푸로 해주시고요. 대소변은 이렇게 예방주사는 또 이렇게 맞혀주시고요…”
집과 침대며 베개와 빗까지 한 살림을 옮겨 받았다. 오만 설명이 그칠 줄을 모른다. 바빠서 선도 못 보겠다는 말이 얄미울 정도다. 자식이 두고 간 자식 아닌 자식을 꼼짝없이 보게 됐다. 애비가 퇴직하니 할 일 없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줄 안다.
“아리야, 아리야, 이리와 어서 와 ”
우리 내외는 난데없이 대리 손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서로 낯을 익히고 정이 들려면 먹잇감이 최고라는 생각이 번쩍 들어 곁에 있던 먹이를 얼른 던져주었다. 바라만 보던 녀석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꼬리를 두어 번 살짝 흔들어 본다.
다시 먹이를 던져주니 나와 굴러가는 먹이를 한 번씩 돌려본다.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음이다. 한 번 더 던져주니 잽싸게 낚아 먹는다. 이제 친해보려 작정을 한 모양이다.
먼 길에 피곤하기도 하였겠지만 배도 고팠을 것이다. 던지는 대로 롱 슛 골인이다. 손자를 키워보지 않았지만 비슷한 감정일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더니 제법 앞서서 촐랑댄다.
핥고 기어오르고 낑낑대며 갖은 애교를 다 부린다. 밟힐까 염려돼서 걸을 수가 없다.
모처럼 사람 사는 집 같다고 느껴진다. 참 귀엽다. 이래서 키우는가 싶다. 대소변을 한차례씩 치루고 나니 온 집안에 개 냄새가 베인 것 같고 터럭이 날린다. 목욕을 시작했다. 내 팔자에 개 목욕이 있은 줄은 몰랐다.
밤이 되면서 현관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얌전히 자라했더니 함께 자자며 문을 닥닥 긁어댄다.
이럴 수가 있느냐고 낑낑대며 사정을 한다. 잠자리에 들려했더니 날 두고 당신들만 편한 잠 자려하느냐며 덜컹덜컹 흔들어댄다. 고함을 쳤더니 한 수 더 떠 으르렁댄다. 앙칼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른다. 그 예쁨 속에 그런 분노가 있을 줄이야.
첫날밤을 힘들게 보냈다. 낮에 든 정이 밤이 되자 피차간에 반전된 것이다. 내가 무슨 강아지를, 난 못 키워, 안사람도 마찬가지다. 귀여운 것은 귀여운 것이고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궁리를 하였다. 녀석이 키워달라고 부탁은 했지만 저나 우리나 키울 수 없는 처지니 남 주자는 결론이었다.
누굴 줄까? 생각하다 평소 친분이 많았던 분인데 자상하고 또 아이도 있어 잘 키울 것 같아 아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주기로 했다. 그 분도 좋다며 키워보겠다기에 짐을 꾸렸다.
아리는 무언가 낌새를 알았는지 눈빛이 다르다. 어젯밤 있었던 서운함인지 내가 너무했지 하는 반성인지, 왜 짐을 꾸리느냐. 나를 어찌 하려느냐. 는 무언의 항의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눈빛은 어제의 눈빛이 아니다. 그 눈 속에는 벌써 눈물이 있었다. 먹이를 주며 불러도 꼬리만 한두 번 흔들 뿐 표정은 굳어있었다. 잔잔한 파문이 가슴에 인다.
“아리야 미안하다. 나는 너를 키울 수가 없단다. 너를 더 좋아하고 너로 인한 불편함까지도 감사하며 사랑해줄 주인에게 가거라. 어찌타 너에게 못할 짓을 하는구나. 그간에 들었던 미운 정 고운 정 이제 우리 잊고 살자”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아리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 날 밤 우리 내외는 짧은 밤을 뒤척이며 길게도 새웠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정이 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함을 확인했다. 눈만 뜨면 앞서가는 아리에 밟혀 다닐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오후가 되자 날이 번쩍 들어 집안에 있기가 민망할 정도로 청명한 날씨다. 모처럼 아리의 빈자리를 매우고도 남을 만큼 기분도 가벼워졌다. 바람이나 쐬러가자며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아버지, 아리를 대체 누구한테 줬어요. 아리가 지금 거리를 활보하고 있데요. 이 전화번호로 전화해서 아리 빨리 찾아오세요”
날벼락 같은 아들의 성화에 정신이 번득 났다. 전화를 하니 아가씨가 받았다. 복잡한 네거리에서 달리는 차들 사이로 빠져 다니는 아리를 붙잡았다고 한다.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새겨진 목걸이를 보니 버린 강아지는 아닌 것 같아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출근에 쫓겨 잡아두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기네 아파트 안에 몰아넣었으니 찾아보란다. 고맙고도 아쉬운 전화였다.
모처럼의 외출을 포기하고 집을 나섰다. 어떻게 해서 미아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그것은 둘째고 지금은 어디 있는지. 혹시 차에 치지 않았는지 누구에게 붙들려갔는지 생각할수록 걱정이 커진다.
아리를 외쳐 부르며 묻고 또 묻고 아파트를 수없이 돌았으나 헛일이었다. 경비실에 부탁도 했다.
하얀 것은 모두 아리로 뵌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오니 밤 한시다. 새벽에 다시 나가 한 바퀴 돌았으나 아리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자식 잃어버린 부모 심정이나 이산가족의 아픔이 어떠할까 짐작이 간다. 찾으면 사과하고 함께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틀 후 한 소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리가 여기 있으니 찾아가란다. 그 순간 그 감격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내 평생의 어떤 감격과도 비교할 수 없다.
목걸이가 있으니까 언젠가는 찾을 거라고 막연한 기대를 하였는데 그게 맞았다.
철 이른 수박 제일 큰 걸로 한 덩이를 사가지고 달려갔다.
그렇게 귀엽던 아리는 어디가고 검불을 온통 뒤집어 쓴 망나니 굴뚝새가 되어 있었다. 무얼 먹고 어떻게 살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나는 살아온 것만도 감사하며 눈물로 안고 왔다.
며칠이 지났다. 다시는 남 주지 않겠다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린다.
나름대로 할 일이 많아 아리에게 매달릴 수도 없고 정드는 게 두렵기도 하였다. 이 나약한 다짐. 무정한 마음을 아리가 알면 얼마나 섭섭할까? 그러나 비정한 결론을 내렸다.
아리를 애견사에 맡겨 참으로 원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다. 마음을 모질게 먹고 목걸이도 풀기로 했다. 그것이 있는 한 언제까지 지킴이로 있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인연인데 영원한 작별을 하려니 마음이 저리다. 애견사에 맡기고 그간 나눈 정을 아파하며 다른 인연 만나 잘 살아달라고 기원하고 왔다.
그 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눈물이 먼저 아리를 찾는다. 도저히 그 마음을 누를 수 없어 한번은 찾아갔다. 낯선 만남처럼 어리둥절 하는 그 눈 속엔 그 때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리의 눈물. 지금 내 가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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