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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4주년 3·1절을 보내며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23년 03월 03일(금) 00:00
/김규식 전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추운 겨울이 조금씩 물러가고 있다. 아직 봄은 일러서인지, 날씨는 여전히 쌀쌀하지만, 어쨌든 이제 곧 따뜻해질 것을 우리는 안다.
이맘때쯤이면 3·1절이 찾아온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상황 가운데에 3·1독립만세운동으로 독립의 열망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던 1919년은 이맘때쯤의 날씨와 닮아있다.
여전히 쌀쌀하지만 이 추위가 물러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1919년 3월 1일, 대일항쟁이 10년이 지나고 있었던 시점이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종의 장례가 치러지기 이틀 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종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왔고 이는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폭력사태의 유혈을 염려한 민족대표 33인을 뒤로하고, 경신학교 학생이었던 ‘정재용 선생’이 낭독한 독립선언을 기점으로, 전국에 걸쳐 수개월간 2백여만 명이 참여하여 1600여회 이상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당시 일제의 억압에 맞서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특별한 계층에 국한되지 않았다.
학생, 노동자, 농민, 상공인 등등 남녀노소,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만세운동을 외쳤다.
이들을 거리에 나오게 한 것은 순수한 민족적 사명감과 긍지에서 오는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었기에,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칼을 빼어 휘두르고 기마대를 동원해 보았지만, 만세운동의 행렬은 그칠 줄 몰랐다.
그 기간 동안, 750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1만5000여명의 부상을 당하고, 4만5000여명이 체포되었지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독립투사들의 기개로 인해, 지도자 없이 지식인과 시민들에 의해 일어난 항쟁은 많은 역사적인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무단통치의 한계를 느끼고 문화통치로 노선을 바꾸게 되며,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우리 민족은 1919년 4월 11일 앞으로의 독립투쟁 역사를 이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5·4운동과 대만의 독립운동 등 식민 지배를 받던 국가들의 민족독립 운동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3·1운동은 웅크리고 있던 민중들의 독립정신을 일깨워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임을 인식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을 태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태동은 곧 광복을 향한 초석이 되었고,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되었다.
104주년 3·1절에는 독립을 열망하며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열들을 기억하고, 우리 민족을 하나로 만들어 진정한 대한민국의 시작을 만들어낸 3·1운동과 그 정신을 되새겨 보는 날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모두가 곧 다가올 따뜻한 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맞이하게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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