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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4(금) 14:31
엄마가 계신 그곳은 봄이 어디쯤인가요?
호남매일 honamnews@hanmail.net
2025년 04월 01일(화) 00:00
/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봄빛이 머물다간 강가에는 나무에 물이 올라 올리브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매화꽃이 피는 시기에 태어나신 엄마는 벚꽃이 지는 시기에 하늘나라 여행을 떠났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노래를 좋아하셨던 엄마를 생각하며 연분홍 치마를 입고 봄나들이 갈까 보다.
엄마 기일이 멀지 않았다. 엄마의 숨결이 그리워 어릴 적 엄마와 손잡고 갔던 담양 오일장에 갔다.
장터에서 쑥부쟁이, 머위, 달래를 놓고 파시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다듬어진 몇 가지의 나물을 담았다. 장터를 몇 바퀴 돌고 났더니 장바구니에는 봄이 가득 찼다.
엄마가 그리운 날은 엄마가 평소 해 주었던 음식 생각이 난다. 봄이 되면 나물을 무쳐서 양푼에 밥을 비벼서 먹었다. 봄이면 먹었던 쑥부쟁이 나물은 사라진 옛 기억을 다시 찾아준다. 엄마가 해 주었던 맛을 소환해 쑥부쟁이, 머위, 달래를 아껴두었던 간장과 참기름을 듬뿍 넣어 무쳐 보았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나물은 쓴맛과 단맛이 들어 그냥 먹어도 맛나다. 나물을 오물오물 곱씹으며 엄마의 숨결을 찾으니 봄이 더 가까이 오는 듯 하다.
엄마와의 추억을 찾다가 노년에 담양 아들 집에 터를 잡으신 아버지를 뵈러 갔다. 마을 느티나무가 있는 회관 앞에 들어서자 집으로 홀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인다.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삶이 쓸쓸해 보인다. “아빠” 부르자 무슨 일이냐며 반가운 표정이다.
오라버니 내외는 수박 농사로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97세가 된 아버지는 홀로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거실에 앉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버지의 기억은 널을 뛰듯이 공간을 넘어 다닌다.
현재의 기억보다는 과거의 삶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걸 보니 노년의 현상이다. 97세 연로하신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평소 부지런했던 아버지는 텃밭에 나가 잠시라도 일을 하면 몸이 견뎌내지 못해 병원에 입원해서 큰 오빠 내외는 일하는 것을 말릴 수밖에 없다. 봄이 되어 화단에 심어진 국화를 쑥으로 착각해 뽑아버려 새언니가 속상했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아버지는 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는 무료한 일상의 설움을 삼키신다.
소파에 앉아 계신 아버지는 이야기를 나누다 혼잣말을 한다. “암만해도 내일은 가야겠다.” “아빠 어디를 가려고, 엄마는 집에 안 계셔” 아버지 기억은 엄마와 함께 살았던 시기로 간 것이다.
아버지와 이야기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어릴 적 담양 창평 감 골의 기억, 청소년 시절 경기도 개풍군으로 이사를 했던 기억, 결혼해서 산 엄마와 가족의 기억, 현재 상황에서 공간의 이동은 아버지의 기억에서 소화되어 가끔은 오빠 내외를 힘들게 한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 며느리와 함께 지내며 걷고 산책한다는 것은, 큰 복이라고 했더니 미소를 지으신다.
큰 새언니에 의하면 집에 한다면 이삿짐을 몇 번 쌌다고 한다. 그 기억은 어디로 소환된 기억일까? 세상이 힘든 시절에 태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월을 말없이 견뎌내신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 치밀어 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변에서 차를 멈추어 노을을 바라보며 울음을 삼켰다.
김훈 작가는 ‘허송세월’의 서문에 늙기의 즐거움이라는 글에서 ‘부고를 받을 때마다 죽음을 이행해야만 할 일상의 과업처럼 느껴진다. (중간 생략) 애착 가던 것들과 삶을 구성하고 있던 치열하고 졸렬한 조건들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은 쓸쓸해도 견딜만하다. 이것은 속수무책이다.’ 그렇다. 늙어간다는 것은 속수무책이며 개별적인 상황에서 삶을 견디는 고통의 차이는 다를 것이다. 이에, 노년에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무료한 나날의 삶을 견디는 것이다.
엄마의 기일을 준비하며 바쁜 큰 새언니의 일손을 손녀가 힘을 보탰다. 엄마가 하늘나라 가신 세월이 벌써 13년 되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엄마의 자녀들은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엄마 계신 그곳에도 봄이 왔죠.” 엄마의 기일을 맞이하여 큰 언니가 준비하신 짠지(겨울 동안 동치미를 채를 썰어 만든 음식)를 커다란 양푼에 넣어 비벼 먹으며 엄마가 해 주었던 짠지 음식을 추억하며 하루를 보냈다.
엄마의 기일을 지내면서 삶과 죽음은 세월의 강을 건너며 풍화되어 먼지로 흩어지는 공간의 세계를 경험한다. 서로의 기억 속에 함께한 풍경을 소환하며 애착하던 것과 결별하며 맞이하는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 엄마가 계신 그곳은 봄이 어디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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